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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말의 기원과 의미: 동서양이 함께 건네는 이별의 언어

by 우와 2025. 12. 17.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말할 때, 때로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상징적인 언어를 선택한다. 특히 반려동물이 죽음을 맞게 되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반려동물

 

1. 동양의 세계관 속 ‘다리’의 상징: 이승과 저승 사이의 통로

동양에서 죽음은 완전한 끝이라기보다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에 가깝게 이해되어 왔다.

유교·불교·민간신앙이 혼합된 동아시아의 사유 체계에서 삶과 죽음은 단절된 두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 안에 놓인 단계였다.

이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등장한 상징이 바로 ‘다리’와 ‘강’이다.

한국과 중국의 전통 설화에서 잘 알려진 삼도천(三途川) 은 사람이 죽은 뒤 저승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으로 묘사된다.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건너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이 이야기는, 도덕적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건넌다’는 행위 자체에 중요한 상징성을 부여한다. 이때의 다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다.

중요한 점은, 전통 문헌 속에 ‘무지개다리’라는 명칭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동양에서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잇는 징표, 혹은 비일상적이고 신성한 현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비가 그친 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는 인간의 유한한 삶과 닮아 있었고, 그래서 하늘의 뜻이나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암시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라는 개념은 후대로 오며 점차 빛의 다리, 하늘의 길 같은 이미지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표현은, 전통 개념을 그대로 옮겨온 말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상징들이 현대적 언어 감각 속에서 재구성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2. 서양 신화와 시 속의 무지개: 세계를 넘나드는 길

서양에서도 무지개는 오래전부터 경계를 넘는 상징으로 존재해 왔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비프로스트(Bifröst) 는 인간의 세계인 미드가르드와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를 연결하는 불타는 무지개다리다. 이 다리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로 묘사되며, 인간과 신, 삶과 죽음 사이의 긴장감을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무지개가 여신 이리스(Iris) 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리스는 신들의 전령으로 하늘과 땅을 오가며 소식을 전하는 존재인데,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무지개가 남는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무지개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차원을 연결하는 흔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Rainbow Bridge”라는 표현은 이러한 고대 신화에서 직접 이어진 것은 아니다.

현재 알려진 ‘레인보우 브리지’ 이야기는 1980~1990년대 미국에서 익명 또는 여러 저자를 통해 퍼진 짧은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에서 무지개다리는 먼저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들이 고통 없이 뛰놀며 주인을 기다리는 장소로 그려진다. 그리고 언젠가 주인도 삶을 마치면, 다시 만나 함께 다리를 건너간다.

이 서사는 종교적 교리나 심판의 개념을 배제한 채, 순수한 재회와 위로에 집중한다. 그 결과 “He crossed the Rainbow Bridge”라는 말은 서양에서 반려동물을 애도하는 문화권 내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애도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는 인간의 장례나 공식적 추모 전반에 쓰이는 표현이라기보다는,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다루는 맥락에 한정된 언어라는 점에서 그 범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왜 우리는 ‘무지개다리’라는 말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동서양의 사례를 함께 살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드러난다. 문화와 종교는 달라도, 인간은 오래전부터 죽음을 길과 여정, 그리고 다리로 설명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죽음을 단절이 아니라 이동으로 이해하려는 보편적인 심리에서 비롯된다.

무지개다리가 특히 강한 울림을 갖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무지개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자연의 이미지다. 공포나 두려움보다, 잠시 멈춰 서서 올려다보게 만드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무지개는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모습은, 유한한 삶이기에 더욱 소중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셋째, 여러 색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아치를 이루는 무지개는 한 존재의 삶 역시 다양한 감정과 경험이 모여 완성된다는 은유로 읽힌다.

그래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말은 죽음을 가볍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 앞에서, 남아 있는 이들이 선택한 언어적 완충 장치에 가깝다. 이 표현은 떠난 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픔 속에 남겨진 사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표현이 주로 반려동물에게 사용되는 것은 문화적 관습의 결과이지만, 그 상징의 뿌리는 인간의 죽음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다만 사람의 죽음에 사용할 경우에는 공식적인 애도보다는 개인적인 글이나 문학적 맥락에서, 그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며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지개는 늘 비가 그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슬픔을 통과한 뒤에야 우리는 무지개다리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그래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말은 이별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이 오래도록 품어온 가장 조심스럽고도 따뜻한 상상일지 모른다.